니에프스가 갑작스럽게도 뇌졸중으로 사망하자, 그때부터 다게르는 홀로 ‘시행착오’의 원칙에 따라 잠상고정에 적당한 방법을 계속 찾아나간다. 니에프스의 생존 당시 다게르는 우연히 요오드화 은의 감광성을 접했고, 약 3분간의 노출로 ‘정반대의 사진’(네거티브) 형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고정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촬영한 주형석고상으로 만든 정물, 바구니에 들어 있는 병, 액자틀 속의 그림과 천의 주름장식들을 요오드화은 판 위에 잡아내어 수은증기 속에서 현상한 다음 따뜻한 소금물에서 상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1837년에야 잠상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 중에서
1839년 1월 마침내 다게르의 발명품이 곧 소개된다는 소문을 들은 톨벗은 자신의 방식이 다게르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 채 수년 동안 묵혀두었던 자신의 발명품을 영국학사원에 알리고 우선권을 지키려 했다. 몇 달 후에 두 방식의 화학적 세부사항이 대중에게 알려지자, 톨벗은 다게르가 기술적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자신을 앞질렀다는 것을 인식했다. 왜냐하면 다게르는 국가가 자신의 사진처리방식을 두둑한 종신연금을 주고 매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