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넉 달 만에 도나시앵은 난생처음으로 감옥을 경험한다. 죄목은 과도한 방탕과 예수상(像)에 대한 신성모독 행위. 수감은 보름 동안 이어졌다. 같은 시기, 슈발리에 드 라 바르는 이보다 훨씬 덜한 문제를 가지고 끝내 처형당했는데, 아마도 그를 보호하는 세력의 권세가 그만큼 약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질베르 렐리는 무척 의외라는 듯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잔 테스타르의 증언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극단적 신성모독 행위와 과도한 방탕이라면 그 당시 형법 기준으로 볼 때 대단히 엄청난 중죄로 단죄되기에 충분하다. 제아무리 탕아의 계급과 연줄이 막강하다 해도 그만한 광란의 짓거리에 대해 체제권력이 너그럽게 넘어가준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만약 사드가 아닌 다른 누구였다면 사악한 마녀나 독신자(瀆神者)를 화형에 처하듯 가차없는 극형에 처할 일이었을 터이다.”
― 92쪽, <15년간의 방탕> 중에서
2월 15일에 사드는 뱅센의 11호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16개월 동안 그의 아내는 온갖 수단들을 동원한다. 그런 아내를 상대로 사드는 엄청난 서신교환의 첫 장을 개시한다. “사랑하는 당신으로부터 놈들이 나를 수치스럽게 앗아간 저 끔찍한 순간 이후로…….” “신이시여, 나는 언제쯤 나가렵니까? 이 몸을 산 채로 처박아버린 이 무덤으로부터 말입니다…….” 이에 대해 르네 펠라지는 봉하지 않은 짤막한 쪽지 정도로 응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위 ‘우유로 쓴 편지’라 불리는 방식으로, 은현(隱現)잉크를 사용해 암호화된 글자들을 써내려갔는데, 이내 기발한 면면을 보이게 될 이 제2의 언어활용법에 있어 도나시앵은 그야말로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 사드는 마침내 장모에게 간청을 하게 된다. “마담, 천지신명의 이름으로 비오니, 제발 저를 이 혹독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혹은 자신의 피를 묻혀 편지를 쓰기도 한다.
― 141쪽, <작가 D. A. F. 드 사드> 중에서
사드 자신은 자기 소설이 모든 사람한테 읽힐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증인 레이노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지금 내 소설이 인쇄 중에 있습니다만, 당신처럼 점잖고 경건한 사람한테 보내기에는 너무나 부도덕한 내용이라오. 나는 돈이 필요했고, 출판업자는 나더러 이야기에 좀더 후추를 뿌려 달라고 부탁했소이다. 그래서 그가 세상에 악마를 살포할 수 있도록 내가 허락한 거지요. 책제목은 『쥐스틴』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연히 그 책을 손에 넣게 되거든, 절대 읽지 말고 그냥 태워버리십시오. 내가 그 책을 부정합니다.”
사드는 계속해서 그 소설을 다시 손질하여 위태로운 경지로 몰아가고, 끊임없이 후추라든가 향신료를 첨가하면서도, 정작 서명조차 하려 들지 않음으로써 끝끝내 자기 작품임을 부정한다. 이를테면 공인으로서의 사드가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을 그의 쌍둥이 악마가 차근차근 집필한 셈이다. 그토록 무대 위에 올리고자 애쓴 ‘조절된’ 작품들 말고, 이처럼 본인 스스로가 어둠의 문학으로 치부했던 작품들이 정작 사드라는 이름을 확고부동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볼 때 매우 놀랍고 의미심장하다.
― 213쪽, <혁명 속의 사드> 중에서
아폴리네르가 그 이름을 부여해 주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훗날 「알코올」의 시인이 될 바로 그 사람이 1905년 멋들어지게 서문을 쓰고 편집 출간한 선집을 통해 비교적 일찌감치 후작의 작품을 접했다. 그 즉시 화두로 떠오른 ‘욕망의 전능함’이란 개념은 이제 오랫동안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리테라튀르(Litt럕ature, 문학)》(1919~1921)의 출간과 더불어 미래의 초현실주의자인 다다이스트들은 사드의 추문이 갖는 잠재력을 천착하고, 욕망과 열정을 재료로 해서 자기들만의 예술적 이상을 구현해 줄 회심작들을 만들어낸다. 아울러 그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미학을 살찌울 만한 요소들을 후작에게서 찾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 379쪽, <성(聖) 사드, 작가이자 순교자> 중에서
더 이상 귀족도 없고 후작도 없으며, 과격하게 반기를 들고 모독해 줄 엄하고 정의로운 신도 없으니 말이다. 이제 인간은 자기 자신한테 시비를 걸고, 자기를 먹여 살리는 악마들을 혼자서 추적하는 일밖엔 할 것이 없다. 사디즘은 기껏해야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의 업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억제되지 못한 관능이나 무절제한 욕망은 인간심리 속에 그것들이 어떻게 뿌리박고 있나를 살피기 위해서만 거론될 뿐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권한이 전문의사들에게만 허락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합리적인 규칙인 셈이다. 영혼의 도도한 쾌락인 사디즘은 이제 육체 속으로 내려가버렸다.
― 422쪽, <사디즘과 사도마조히즘> 중에서
에로티시즘 문학에는 사드 이전과 이후의 구분이 명확하다. 사드의 소설에 한번 충격을 받은 독자는(쥘 자냉이 『쥐스틴』을 읽고 나서 심한 발작을 일으킨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18세기와 그 이전 시대에 풍미했던 고만고만한 음란물들에선 더 이상의 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레티노의 작품은 이제 다채로운 수사(修辭)의 목록 이상이 될 수 없고, 존 클리랜드의 『패니 힐』(1747년)은 『몰 플랜더스』의 외설적인 재탕에 지나지 않으며, 제르베즈 드 라투슈의 『샤르트르 수도원의 문지기』(1741년)도 “방탕하기보단 치기 어린 추잡함에 물든 작품”(『쥘리에트』)이다. “뭔가가 되어보려고 탕아인 척했지만, 결국 당시에도 나중에도 평생 하찮은 존재였던” 미라보의 별볼일없는 작품들, 심지어는 『로르의 교육』(1788년)까지도 한낱 빈털터리 귀족으로서 호구지책 삼아 써 갈긴 작품으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이렇듯 ‘신성한 후작’은 제멋대로 문학비평가 행세를 해가며, 어마어마한 수의 작품들을 통틀어 단 하나 『철학자 테레즈』(부아예 다르장, 1748년)만을 “방탕과 불경을 기분 좋게 연결시킨 유일한 작품”이자, “대중에게 부도덕한 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줄” 수 있는 작품으로 꼽는다. 이밖에 18세기를 떠도는 엄청난 양의 하위문학 작품들은 『쥐스틴』의 저자가 보기에 “카페나 유곽에서 대충대충 쓰여진 후줄그레한 소품들일 뿐이며, 그것을 만든 가련한 저자들이 머리도 배짱도 텅 비어 있음을 증명할 따름이다.
― 535쪽, <첨가된 사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