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이 형무소 문을 연 뒤 "인민군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해방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수감자들이 "만세"를 외치며 뛰어 나오기 시작했고, 국군은 이들을 모두 기관총으로 난사한 뒤 후퇴했다. 6월 28일 경기도 이천에서는 농협 창고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총살한 뒤 가매장을 시도하다가 중단하고 후퇴했다. 충북 오창에서는 창고에 구금되어 있던 보도연맹원들을 일일이 총살할 시간조차 없었는지, 창고 속에 수류탄을 던져 놓고 황급히 후퇴했다.
그러나 학살이 본격화된 것은 7월 이후였다. 대전형무소 재소자 4000여 명을 학살한 7월의 골령골 사건에 이르러 학살은 체계적인 '집단학살'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미군의 입회하에 사진도 찍고, 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헌병 정복을 한 군인들이 총을 쏘고, 확인 사살도 하고, 제복을 갖춰 입은 의용 소방대원이 일사불란하게 매장을 하는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때 색출 작업에 참여한 반공 검사 오제도 입장에서는 "보도연맹을 만드는 바람에 오히려 좌익들을 조직화해 준 것 아닌가? 호랑이 새끼를 키워준 것 아닌가?"라는 비난을 받는 상황이었으므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빨갱이 사냥'에 나서야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 본문 229~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