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도 왕권을 강화한 인물이지만 세종도 그에 못지않다. 차이가 있다면 태종이 생사를 넘나드는 쟁투의 파고를 넘은 카리스마와 출중한 정치력으로 새 왕조의 골격을 갖췄다면 세종은 가히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으로 문치(文治)의 이상을 실천함으로써 신하들을 설복해 왕권 강화를 이루었다. 태종이 실체의 권력을 다루는 혁명적 정치가였다면 세종은 여백의 권력까지 활용할 줄 아는 경륜의 정치가였다. 태종의 정치가 죽임을 통한 정치였다면 세종의 정치는 살림에 의한 정치다. 태종은 집중을, 세종은 집념을 통해 일을 했고 신하들을 장악했다. 태종은 표범의 정치, 세종은 곰의 정치였다고 할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세종이 신하들의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은 채 탄탄대로를 달리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권력을 유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흔히 생각하듯이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도 아버지 못지않은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생애는 여타의 조선시대 국왕들과 마찬가지로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권력투쟁으로 점철돼 있었다. 어린 시절 형을 제치고 태종의 인정을 이끌어내 왕권을 차지한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양녕과의 권력투쟁이었으며, 여기서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완승을 거뒀다. 다만 아버지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아들은 온화한 현실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3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