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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

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

저자
이명옥 지음
출간일
2002년 10월 20일
면수
202쪽
크기
152*225
ISBN
9788973374891
가격
12,000 원

책소개

금지된 미와 의도된 유혹의 서양미술사,
147점의 원색 도판이 전시된 지면 갤러리로 만나다!


1996년 개관 이래 미술인과 일반인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화랑으로 자리잡은 갤러리 사비나(현 사비나 미술관). 그 성공의 비결은, 위대한 작가의 심오한 예술 세계를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품위 있는 예술의 전당에 기발하고 친근한, 때론 우스개까지 곁들인 겸손한 작품들을 걸어놓고, “마음껏 즐기시라” 말하니 누군들 한번쯤 미술과 친해보고 싶지 않겠는가.
대중에게 좀더 재미있고 친근한 미술을 경험하게 하는 일에 무엇보다 열심인 사비나가 이번에는 금기, 사랑, 유혹, 열정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서양미술의 에로티시즘이라는 흥미로운 그림 에세이로 선보인다. 이 책을 갤러리 사비나의 독특한 전시를 지면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수록된 147점의 도판 가운데는 잘 알려진 ‘명작’은 많지 않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모티프를 제대로 요리해 낸 그림들을 골랐다.
<두려움, 금지된 욕망>이라는 첫 번째 장에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금기의 대상과 내용을 미술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금기와 유혹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성기와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림으로 스캔들을 일으켰던 에곤 실레는 유혹의 화가라기보다는 ‘금기’에 저항하는 반항의 화가라고 할 것이다. 유방은 드러내도 맨발은 감춰야 했던 그림 속의 여인들, 그리고 그녀들의 맨발을 캔버스 위로 드러낸 화가들. 죽음과 추함은 물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금기로 만든 사회를 향해 화가들은 조롱 가득한 붓을 들었다.
<쉽게 지는 꽃,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두 번째 장에서는, 서양미술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랑의 표현들을 만날 수 있다. 눈맞춤, 편지, 질투, 배신, 사랑의 상처 등을 주제로 한 베르메르, 뭉크, 티소 등의 그림을 살펴보면, 기다림과 설레임은 여자의 몫으로 또 악몽과 파멸의 격한 감정들은 남자의 몫으로 그려졌다. 그림들에서는 사랑에 빠진 누구나가 겪게 되는 순수하고도 강렬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눈으로 만지는 몸>은 유혹에 관한 세 번째 장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비장한 죽음을 ‘유방을 무는 뱀’이라는 에로틱한 모티프로, 또 종교적인 기쁨으로 충만한 막달라 마리아를 금발에 휘감긴 벗은 몸통으로 표현하는 못 말릴 화가들의 욕망. 재치 있는 자들은 검열에 걸려드는 법이 없는가. 티치아노, 워터하우스, 프란츠 폰 슈투크 등이 그려낸 여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무모한 열정의 화가들>이라는 마지막 장은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한다. 한 점의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자신의 재능 없음에 절망했던 세잔과 자코메티. 그리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던 다 빈치, 알브레히트 뒤러, 윌리엄 터너…….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열망하는 화가들은 언제나, 기꺼이 유혹당하고, 기꺼이 사로잡혔으며, 아무도 감히 생각치 못한 황홀한 유혹자를 창조해 냈다.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인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붙잡아 영원의 예술을 탄생시킨 것이다.
사비나의 갤러리 안에는 그림만이 걸려져 있지 않다. 그녀는 찬찬히 그림을 읽어내는가 하면, 또 그림은 흘깃 곁눈질로 한번 보곤 여자와 남자의 알 수 없는 사랑과, 마음을 온통 빼앗는 아름다움에 대해 열렬히 소리 높이기도 한다. 편안한 맘으로 그저 즐기며 함께 떠들면 좋다.
갤러리를 함께 거닐며 서양미술사 속에 드리워진 성과 사랑, 여자와 남자의 오랜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열정과 탐미, 금기와 유혹을 화폭에 옮긴 서양미술의 에로티시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눈을 감고 살아가는 지친 사람들에게 “감각의 기쁨과 감칠맛 나는 재미를 일깨우는” 상큼한 갤러리 나들이가 되기를 바란다.

저자 및 역자

본문 중에서

금세기 최고의 화가 중 하나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미셀 아생보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이컨: 지성은 결코 예술을 만든 적도 그림을 만든 적도 없어요.
아생보: 만약 예술이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림은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가슴에서? 위장에서? 아니면 대장에서 나온단 말입니까?
베이컨: 그게 어디서 나오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정말이지 미술이 배꼽 아래서 나오는지 누가 알겠는가?
― 「머리글」 중에서

기독교가 지배적인 유럽에서 여성의 맨발은 더더욱 금기의 대상이었다. 죄악의 근원인 발가락을 보이는 것은 사악한 망령이나 저지를 불경스런 행위였다. 맨발은 경건한 마음으로 신에게 봉사해야 할 남성을 정욕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죄악의 씨앗인 셈이었다.
이처럼 살벌한 풍토에서 예술가들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풍만한 유방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났던 르네상스 시대 귀부인들도 초상화에 맨발이 드러나는 것만은 기를 쓰고 피했다. ‘맨발=동침’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발을 노출시키는 것은 ‘화가와 간통을 했어요’라고 만천하에 광고하는 것과 매한가지였으니까.
화가들은 순결한 성모 마리아의 맨발을 그리는 것으로 허전함을 달랬다. 화가들이 성모의 맨발을 그리면서도 음란 시비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성모는 성적인 대상을 초월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성모의 맨발은 자신을 낮추는 한없는 겸양의 표시일 뿐이다.
― 「감춰진 발, 맨발의 성모」 중에서

1866년, 숨 가쁜 정세의 변화로 몸살을 앓는 격동기의 파리. 엄청난 부호이자 희대의 방탕아로 숱한 염문을 뿌린 터키 대사 카릴 베이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쿠르베에게 은밀한 주문을 한다. 자신의 음탕하고 방종한 취향을 만족시킬 지극히 외설적인 그림을 부탁한 것이다.
착취당하고 박해받는 서민들의 수호자로 부르주아 계급의 기만과 위선에 맞서 열정적으로 싸웠던 혁명아 쿠르베는, 과격하고 타협을 모르는 기질답게 회화의 역사를 뿌리째 뒤엎는 충격적인 음화를 제작한다. 아름다운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를 섬뜩할 만큼 과감히 잘라내고 여성의 생식기만을 화면 가득 등장시킨 파격적인 구도를 선택한 것이다.
수천 년 이상 지속된 금기를 대담하게 깨부수고 냉정하고 차디찬 시선으로 인류의 출생지를 묘사한 혁명적인 그림은 곧 카릴 베이가 아끼는 소장품이 되었다. 대단한 미술품 수집가며 애호가인 카릴 베이는 그림을 비밀 진열실에 몰래 숨겨두었다. 극소수의 가까운 사람들만이 고전주의의 대가인 앵그르의 걸작 <터키탕> 옆에 나란히 걸린 비밀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 뒤 카릴 베이의 품을 떠난 그림은 헝가리·독일·소련으로 거처를 옮기며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55년 세계적인 성의학자이며 철학자인 자크 라캉의 소유가 된 다음에야 겨우 안식을 취하게 된다.
자크 라캉은 그림의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송에게 덮개 그림을 주문해서 위장을 했다(쿠르베 자신도 비밀 그림을 가리기 위해 <볼로냐 성>이라는 풍경화를 덮개 그림으로 그렸음). 풍경과 여성의 하체를 교묘하게 결합한 마송의 가리개 그림 덕분에 <세계의 기원>은 파괴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쿠르베의 정직한 음화, <세계의 기원>」 중에서

“사람들은 내가 지나치게 여자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생각해 봐야 할 것 중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더 있죠?”
살아생전 끊임없는 여성 편력으로 쉴 새 없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로댕은 자신의 바람기를 강력히 항변하였다. 로댕의 지칠 줄 모르는 성욕은 그의 유명세만큼이나 악명이 높았다. ‘현대 무용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사도라 덩컨은 로댕이 자신을 유혹하던 순간을 자서전인 『나의 인생』에서 눈에 보이듯 선명히 그려낸다.
“그는 내리깐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글거리는 그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불타오를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앞에 두고 있을 때와 똑같은 표정을 지은 채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내 엉덩이와 드러난 두 다리 그리고 발을 두 손으로 더듬듯 훑어 내려갔다. 그는 내 몸 전체를 마치 점토를 반죽하듯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에게서는 나를 태우고 녹일 것 같은 열기가 발산되었다. 나의 모든 욕망은 내 존재 전체를 그의 유혹에 내맡기라는 듯 후끈 달아올랐다.”
(중략) 로댕은 이처럼 자신이 사랑한 여인들의 육체를 신의 축복이 내린 두 손으로 어루만지고 빚어 더없이 감미롭고 관능적인 조각품으로 창조해 냈다. 그의 문란한 성 관계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차디찬 대리석에서 녹아내릴 것 같은 여인의 누드가 탄생하는 기적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 「만지고 싶은 몸」 중에서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백금 술잔의 유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포도주 잔을 만들 때도 아름다운 헬레네의 유방을 표본으로 한 술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헬레네의 젖가슴을 닮은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서 유방을 애무하는 듯한 은밀한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중략)
16~18세기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귀족 문화에서 제작된 나체화들이 오로지 여성의 유방을 위해 그려졌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라파엘로의 애인인 포르나리나의 초상화, 보티첼리가 흠모한 시모네타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알폰소 다발로스의 애인 초상화, 티치아노의 딸 리비니아의 초상화, 루브르의 방 한 개를 가득 채운 루벤스의 메디치 마리아 초상화는 유방이 명백하게 화면의 중심이요, 주제임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유방을 위한 초상화」 중에서

모네와 함께 인상파 시대를 주도했던 르누아르 역시 그림에 철저히 중독된 인생을 살다 갔다. 만년의 르누아르는 끔찍한 병고에 시달렸다. 지병인 류머티즘이 악화되어 손이 기형적으로 뒤틀려 도저히 붓을 잡을 수 없었다. 엄지손가락은 손바닥 쪽으로 휘어졌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손목 쪽으로 구부러져 화가로서의 생명은 끝난 셈이었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특수의자에 앉아 구부러진 손에 붕대로 붓을 감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 그의 붓끝에서 더할 나위 없이 풍만하고 감미로운 여인의 누드가 탄생한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르누아르는 1919년 일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전날까지 그는 어린애처럼 희망에 부풀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발전하고 있어.”
죽음의 강을 건너면서도 그의 손가락에 묶인 붓질은 결코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 「화실에 갇히다」 중에서

추천사

목차

두려움, 금지된 욕망
감옥에 간 화가들 / 감춰진 발, 맨발의 성모 / 쿠르베의 정직한 음화, <세계의 기원>/
금기 없는 쾌락의 탐구, 사드 / 처녀의 수호신 아르테미스 /
뭉크의 어두운 환상, <뱀파이어> / 죽음을 부르는 춤 / 미를 훼손하는 시쉽게 지는 꽃, 마르지 않는 샘
첫눈에 반하다 / 편지를 기다리는 여인 / 키스의 여러 가지 의미 /
만지고 싶은 몸 / 저주받은 감정, 질투 / 심장에 대한 장난질 /
파헤쳐진 무덤 / 달리의 마르지 않는 샘, 갈라

눈으로 만지는 몸
집단적 도취, 강간 충동 / 뱀을 부리는 여자 / 여인의 몸을 닮은 항아리 /
목욕하는 여자 / 거울을 들여다보다 / 유방을 위한 초상화 /
그대의 금빛 머리카락 / 장미꽃 향기에 취해 / 미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무모한 열정의 화가들
바토 라부아, 가난한 예술가의 성(城)/ 상처받은 자존심 /
“나는 재능이 없어”/ 천재 명단에 여자 화가는 없다? /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 술에 취한 화가 / 무모한 열정 / 화실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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