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한의 모닥불
1948년 10월,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주동은 좌익사상을 지닌 하급 지휘관들이었다. 여수와 순천이 그들 손에 넘어가고,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민간 좌익세력이 벌교를 장악한다. 그들은 인민재판을 열어 악질 지주들을 비롯한 이른바 반동세력을 공개처형한다.
하지만 토벌군의 대대적인 진압작전에 밀린 반란군은 산악지역으로 퇴각하고,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도 안창민, 하대치 등과 함께 입산, 빨치산 투쟁에 돌입한다.
그 즈음 대학생 정하섭은 남로당 상부의 명령에 따라 순천 지역에 파견되었으나, 상황이 불리해져 퇴각하면서 고향 벌교로 숨어든다. 그는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제각에 살고 있는 무당의 딸 소화를 몰래 찾아든다. 소화는 정하섭이 요구하는 비밀스런 심부름을 하게 되고, 둘 사이엔 애틋한 사랑이 싹트는데…….
2부 민중의 불꽃
해방 이후부터 소작농민들은 농지개혁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친일 지주세력을 기반으로 한 이승만 정권은 지주들이 반대하는 농지개혁을 쉽사리 단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농민들의 불만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북에서는 이미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럼에도 많은 지주들은 친척 앞으로 명의변경을 하거나 남에게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농지를 빼돌린다. 반면 양심적인 지주이면서 무교화주의자인 서민영은 자기 땅을 소작농민들과 공유하여 협동농장을 세우고,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한 야학을 운영한다.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에게 농민들의 농지개혁 요구로 빚어지는 사건들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설득하는데…….
3부 분단과 전쟁
심재모는 서민영, 김범우 등의 도움으로 겨우 용공 혐의를 벗고 풀려나 태백산 지구 공비토벌에 투입된다. 백남식도 산골짜기마다 병력을 투입해 빨치산 토벌에 나선다.
무기와 식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빨치산들은 수없이 죽어간다. 위기에 빠진 빨치산부대는 적극적인 투쟁에서 조직을 보존하고 살아남는 투쟁으로 돌아선다.
농지개혁이 실시되었으나 농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이승만 세력은 그 무렵 치러진 총선에서 크게 패배한다. 절대다수 국민들의 뜻을 외면한 정권이 어떻게 심판받는지를 보여준 이 땅 최초의 정치 보복행위였다.
곧이어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인민군에 밀린 국군은 남쪽으로 후퇴를 거듭한다. 인민군이 남부지방까지 내려오자 벌교 경찰은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로 구성된 보도연맹 원들을 모두 소집한다. 그리고 벌교에서 철수하기 직전 그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경찰이 떠난 뒤에 벌교는 다시 염상진, 안창민, 하대치 등의 좌익세력에게 장악된다. 그들은 읍면마다 인민위원회와 여성동맹위원회, 청년동맹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북식 농지개혁을 단행한다. 이에 많은 인민들이 환호한다.
4부 전쟁과 분단
미군 부대를 탈출한 김범우는 눈 속을 헤매다가 인민군에게 체포되고, 이번에는 인민군의 통역관을 맡게 된다.
중국의 개입으로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삼팔선 부근에서 남북의 젊은 군인들이 죽어가는 소모적인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 그런 상황에서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부대는 전남북과 경남, 지리산 일대에서 유격투쟁을 계속한다.
후방에서 빨치산 대원들이 입을 옷을 짓는 일을 하던 소화는 발각되어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아기를 낳는다.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토벌대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빨치산들은 그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근거지인 해방구를 자꾸 잃어간다. 그러자 그들은 투쟁방식을 기동성을 살린 산악 이동투쟁으로 전환해서 철도 파괴, 열차 습격, 교량 파괴 등을 감행한다.
겨울을 맞아 토벌대는 엄청난 화력과 병력을 동원해 전남북과 경남, 지리산에 동계대공세를 편다. 가혹한 추위 속에서 수많은 빨치산들은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총에 맞아 죽어간다. 그러면서 빨치산부대는 시나브로 소멸되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항전을 멈추지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