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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3 노파가 구슬리듯 대학생을 재촉하고 있었다.
“편재(遍在)라는 것이 되는 마을입니다.”
대학생이 가까스로 입을 열고 있었다.
“편재라니.”
“사전적으로는 두루 퍼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학동에서는 좀 다른 의미로 쓰여집니다. 저 자신이 모든 사물과 두루 합일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모래알이... 더보기 -
P. 27-28 아이가 돌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는 자기 집 마당 가운데 서 있었다. 백주에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물에 빠져 죽었던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라면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단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둘러싸고 쉴새없이 질문의 소나기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햇빛이 우라지게 좋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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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11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마치 모태 속에 들어앉아 있을 때처럼 평화롭고 온화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것이 본래의 상태였다. 지금까지 오랜 잠속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기억이 선명치는 않았지만 몹시 어수선한 꿈을 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슬픔 같은 것이 꿈의 여운처럼 잠시 아이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사... 더보기 -
P. 295-296 오학동을 다녀온 이후로 그는 가급적이면 모든 사물들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보이는 모든 것을 아름다워하려고 노력했고 들리는 모든 것을 아름다워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너 하나의 마음이 탁해지면 온 우주가 탁해지는 법이니라.”
어릴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그는 마음을 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날마다 명상을 계속해 왔으며 여러 가지 경전들을 통해 우주의 근본에 도달해 보려는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 최소한 분별심 정도에서는 헤어날 수가 있었다. 그는 옳고 그름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많고 적음에도 얽매이지 않았으며 있다 없다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이 세상 만물이 썩지 않으면 무엇이 거름이 되어 창조의 숲을 키우리. 비록 세상이 온통 썩어 문드러졌다 하더라도 이제 그에게는 그것조차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눈물겹게만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