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도전정신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겁쟁이 회사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나는 이 회사와 이 IT 분야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HP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HP가 업계를 선도하는 활력 있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인수합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협상을 추진해 왔던 것입니다.”
그 방에 있던 이사들은 모두 피오리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다. 3년 전 그들은, 자만에 빠진데다 활력을 잃어버린 회사를 피오리나가 되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그녀를 영입했다. 그녀의 영입을 반대했던 유일한 이사인 월터 휴렛은 이 모임에 초대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피오리나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이 난국을 타개하려고 모임을 마련했다. 그녀는 만약 상대 측이 인수합병을 무산시키고 자신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을 때, HP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다시는 이 회사가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바로 비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프롤로그 : 최선의 선택, 도전 중에서
1954년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태어난 카라 칼튼 스니드(Cara Carle-ton Sneed)는 거의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칼리’라는 애칭은 대학시절에, ‘피오리나’라는 성은 1985년의 두 번째 결혼으로 얻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매들런 저진스 스니드(Madelon Juergens Sneed)는 초상화 화가였으며, 딸이 네 살이 되자 초상화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아버지인 조지프 T. 스니드 3세(Joseph T. Sneed Ⅲ)는 1960년대 후반 돌연 가나 공화국으로 출국해, 가나 헌법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자녀 3명은 자라는 동안 아버지의 갑작스런 여행에 쫓아다니느라 3개 대륙에서 5개의 학교에 다녀야 했다. 피오리나는 후에 말했다.
“적응하는 법을 배우게 되더군요. 나는 영원한 아웃사이더였지만 그것이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제3장 “내게 기회를 주시오!” 중에서
피오리나는 자기 주위에서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회생활 초기부터 휴렛팩커드를 동경했다. 루슨트를 독립시킬 때는, 1990년대 중반에 훌륭한 성과를 거둔 HP를 벤치마킹하고 그에 필적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휴렛팩커드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방향을 잃어가고 있으며 계획적인 지도를 갖고 있지도 않은 회사입니다. 모두 상승곡선을 타고 있을 때 하향곡선을 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 회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어려운 상황으로 일부러 돌진해 그것을 개선시키는 것이 여태까지 그녀가 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도전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피오리나는 그에 덧붙여 아무도 보지 못한 기회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샀던 데이브 팩커드의 자서전, 『HP 방식(The HP Way)』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모두 합쳐 여섯 번을 읽은 셈이었다. 휴렛팩커드의 초기 이념인 ‘할 수 있다’ 정신에 대해 생각해 본 그녀는, 그 시절로 돌아가 근대적 변혁을 이루어냈던 힘을 다시 끌어낼 수 있다면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내게 기회를 주십시오! 잘 해낼 수 있습니다!”
― 제3장 “내게 기회를 주시오!” 중에서
“이곳은 진보주의자들의 일터입니다. 바로 이 차고에서 두 젊은이가 500달러의 자본금으로 한 산업을 창조했습니다.”
칼리 피오리나의 목소리였다. 휴렛팩커드의 신임 CEO에 의해 거의 10년 만에 기업 브랜드 광고가 제작된 것이다. 화면은 곧이어 시청자들을 1930년대로 안내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흑백 필름에, HP가 탄생한 차고에서 일을 하는 데이브 팩커드와 빌 휴렛의 모습이 보인다. 갓 서른 살이 된 팔팔한 두 젊은이다. 팩커드는 회사의 첫 제품 중 하나인 상자 모양의 오디오 발진기를 들고 있다. 피오리나가 설명한다.
“아이디어는 간단했습니다. 생활에 유용한 것을 만들지 못하면 차고를 떠나지 말자. 그것은 매우 간단하고도 진보적이었습니다.” 그녀가 내레이션을 하는 동안 카메라는 밝게 빛나는 차고를 비춘다. 차고의 문으로 다가가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춰지다가 갑자기 피오리나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된다.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빌 휴렛과 데이브 팩커드의 회사가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첫걸음을 내딛는 우리를 지켜보십시오!”
광고는 검은 바지 정장을 입은 피오리나가 차고의 흰색 문에 기대서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 제4장 차고의 규칙 중에서
피오리나가 휴렛팩커드에 취임하기 전, 최고의 정신적 스승 중 한 명인 루슨트의 회장 헨리 샤크트가 이런 충고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사회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네. 세부적인 것도 그냥 넘기면 안 되지. 저녁모임을 주최할 때면 서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앉을 수 있도록 자리 배정에 신경 쓰게.” 피오리나는 임기 중 첫번째로 맞는 1999년의 연감용 사진 촬영을 하는 자리에서 그 충고를 떠올렸다. 검은 정장을 입고 한 줄로 서는 것보다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남자 이사들에게는 노타이 차림의 셔츠를, 여자에게는 바지를 입혀 세 명씩 짝을 짓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짝으로는 딕 핵본과 월터 휴렛을 고르고 그 가운데에 섰다. 핵본은 차기 회장이니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휴렛을 옆에 세운 것은 이유가 있어서였다. 신임 CEO는 자신이 진짜 휴렛 옆에 서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 제5장 이사회 속으로 중에서
2001년 3월 멕시코시티의 HP 공장을 방문했을 때, 피오리나는 어려운 시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그녀는 2001년의 탄탄한 실적에 대해 간단하게 직원들을 치하한 뒤 이렇게 경고했다.
“여러분들이 몸담고 있는 시장과 같은 속도로 성장해 가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죽을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여정입니다.”
일부 직원들은 그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고, 다른 이들은 자기들의 믿음, 즉 HP는 어려운 시기를 부드럽게 헤쳐갈 수 있다는 일반적인 믿음에 더욱 매달렸다. 직원들은 HP 사업의 침체가 심화될수록 회사의 ‘빛나는 정신’을 보존하려는 피오리나의 의지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런 문구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설득력이 없었다. 그녀의 새로운 메시지는 모두 긴축에 관한 것으로서, 강제적인 휴가비의 삭감에서 시작하여 급여인하와 강제해고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결코 HP 방식이라 할 수 없었다.
― 제7장 세 가지 질문 중에서
휴렛팩커드는 그날 오후 보도자료를 급하게 준비하여, 팩커드 재단의 결정에 매우 실망했으며, 회사의 ‘많은 주주들’에게 합병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알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합병과 그것을 위해 싸워 온 여성 CEO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합병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가트너 그룹의 투자분석가인 토드 코트(Todd Kort)가 주장했다. 심지어 U. S. 뱅코프 파이퍼 제프레이(U.S. Bancorp Piper Jaffray)의 투자분석가인 애쇼크 쿠마(Ashok Kumar)는 12월 7일 저녁 한 기자에게 “이제는 끝났습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정도였다. 쿠마는 다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칼리가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다소 부풀려진 주장을 계속하는 것은 마치 서커스 공연은 하지 않으면서 두 명의 어릿광대를 데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 제8장 월터 휴렛의 반란 중에서
칼리 피오리나는 휴렛팩커드에 들어오면서 세계의 야심 있는 여성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불가사의하게도 중년의 남성 CEO들의 역할 모델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지휘권을 지키기 위한 전투가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보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어떠한 지도자라도 환호가 멈췄을 때 부딪칠 수 있는 예고였다. 언젠가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Jeff Bezos)는 전화를 걸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포옹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전화 포옹입니다!”
― 제9장 피오리나의 전쟁 중에서
“우리는 보조개표(투표용지의 천공 자국이 제대로 뚫리지 않은 표-옮긴이)도, 천공 밥이 떨어져 나가지 않은 표도, 천공 자국이 겹친 표도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분명합니다.”
동시에 그녀는 진지한 말을 꺼냈다. 그녀는 변화를 포용해 준 주주들과 꿋꿋이 견뎌준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상대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냉정을 되찾으면, 위임장경쟁에서 빚어진 적대감을 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뒤 휴렛 가족과 팩커드 가족에게 평화의 신호를 보냈다.
“회사에 여러분들의 이름이 달려 있는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해 나가길 원합니다.”
완벽한 끝맺음이었다. 그녀의 팀은 승리했고, 창업자 가족에게는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섯 달 동안의 위임장경쟁에서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이 회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회사를 위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위해 얼마나 단호히 싸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 제10장 위임장경쟁 중에서
이론적으로 데이브 팩커드와 빌 휴렛은 여전히 그녀의 영웅이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가 끝넌 후, 회상에 잠긴 그녀는 팩커드가 1950년대에 행했던 고전적인 경영원칙에 대해 생각했다(몇 가지는 그녀가 문제로 생각하는 사항들이기도 했다). “그의 원칙은 이 회사를 이끌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HP 컴팩 합병에 대한 전투가 수그러든 뒤, 그녀는 창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삼갔다. 마치 먼지방지 덮개를 씌워 그들을 벽난로 위에 고이 모셔둔 것 같았다.
“테크놀러지는 엔지니어가 벌이는 게임 이상의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터득해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지요. 업계를 이끄는 테크놀러지 기업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실제로 테크놀러지에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오리나는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들도 HP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이해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녀는 이제 모든 기업들이 표본으로 삼는 강력한 실용주의 회사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을 주목하고 있다.
― 제12장 최고의 리더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