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에 생각해 낸 해결책이 ‘슈조 명상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노자키 슈조를 어느 만큼 생각하든, 또 어떤 생각을 하든─부끄러워서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이든, 말도 안 되게 엉뚱한 것이든─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오후 3시 반부터 5시까지로 정하고 매일 실행했다. 툇마루에서 좌선을 하거나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서, 때로는 드러누운 채, 서서히 기울어가는 강한 햇살 아래 땀을 뚝뚝 흘리면서 1초의 짬도 없이 슈조를 생각했다. 슈조와 나의 미래편, 현실편, 패닉편, 판타지편, 사랑의 도피편, 외국편을 넘나들며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아이디어가 바닥나면 이번에는 슈조의 세세한 부분을 떠올렸다. 그의 엄지손가락 첫 번째 마디에서 시작해 필통에 간 금까지. 이때 유일하게 나 자신에게 금한 것은, 성격 이상자니 욕구 불만이니 하면서 스스로를 엄하게 추궁하는 것. 따라서 무슨 생각이든 해도 되는 것이었으며, 나는 매일 그 한 시간 반 동안 정말로 행복했다.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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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몇 번이고 키스를 하고, 몇 번째인가의 키스 때 나는 갑자기 세상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이 아이와 함께라면─기도하는 심정으로 나는 생각했다─이 아이와 손을 맞잡고, 이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고, 이 아이와 키스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그 집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은데.
“지금 밴드, 그다지 재밌는 것 같지 않아.”
“그렇구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눈앞에 있는 이 사내아이가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그것을 나한테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두근거린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리고 이런 말밖에 못하는 나 자신에게 조금 실망한다.
“재미가 없으니까, 요즘은 카피 같은 것만 하고 싶어져서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코트 깃에 턱을 파묻듯이 잔뜩 웅크린 채 롤링 스톤스의 노래를 조그맣게 흥얼거린다.
그러고 있는 그가 무력한 어린애처럼 보였다. 네가 내게 특별한 존재이듯, 나도 너에게 특별해질 수 있을까? 재미없는 것, 갑갑한 것, 싫은 것, 쓸데없는 것,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너를 지켜줄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에게 어떻게 전해야 좋을지. 그런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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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동안 좋아하고, 3년간 함께 살았다. 온 세계가 이 남자로 형성되어 있었고, 도시도 사람도 현실도, 모두 이 남자 너머로 보였다. 앞으로 나는 몇 번이 됐든 사랑을 할 게 틀림없다. 한때 함께 살았던 남자에 대해서도 서서히 잊어가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겠지. 그러므로 그때 나는 몇 번이고 거듭 생각했다. 언젠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사실 서로 알지도 못했고 서로를 원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함께한 시간을, 아주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짓은 하지 말자. 나도 그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필요로 했던 시간이 분명코 있었다고 믿기로 하자.
― 중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의 출처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싫은 점이며 맞지 않는 점을 아무리 들어도 그 사람이 싫어지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내가 아닌 누군가가, 예를 들면 하느님 같은 존재가 그렇게 만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누군가가 “이제 됐다, 그만 끝내도 좋다”라고 말할 때까지, 나는 열병에라도 걸린 듯 이 남자를 좋아한 다. 분명 그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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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부터 가는 장소는 무척 더운 곳이야. 나는 그 더위의 종류를 알지 못하고, 그곳에서 야마구치가 어떤 식으로 웃고 또 침울해 하고 있을지 그런 것도 알지 못해. 야마구치의 얼굴을 그려보려 하지만, 이제는 흐릿한 윤곽만이 떠오르고, 그를 만나러 간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어딘가 먼 곳에 있을 나 자신의 알맹이를 이제부터 되찾으러 가는 듯한 기분이다. 불안과 실망과 허전함과 의문, 그런 것들의 사이를 빠져나가, 전철은 전속력으로 어딘가 멀리, 상상마저도 닿지 않을 장소로 나를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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