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문학적 상상력은 그 자신이 삶 속에서 맞닥뜨린 경험과 그것의 의미에 대한 집요한 탐색에서 비롯된 역사·사회의식의 토대 위에 튼실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대의 많은 작가들과는 달리 ‘정의’ 또는 ‘올바름’이라는 고전적 가치를 뒤집거나 야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역사 속에서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사유형식을 자의적으로 교란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 삶 자체의 엄숙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며 역사적이다.
1970년 『현대문학』에 그의 단편소설 『누명』과 『선생님 기행』이 추천 완료되면서 시작된 그의 전반기 문학에 포함될 수 있는 50여 편의 중·단편소설들은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역사·사회적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 없다.
<서론 중에서>
조정래의 문학적 상상력은 삶의 작은 편린들과 다양한 인물들의 다채로운 행위들을 통해 작품 너머의 세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그의 상상력은 그만큼 변증법적으로 작동한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 세계는 풍요로운 삶의 공간을 이루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론적·감성적 진폭이 그다지 크지 않으며, 비평가들의 섬세한 분석을 요구할 만한 미학적인 난제들을 남겨놓지도 않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폭’은 물론 정서의 ‘강약’과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해석의 다양성이나 정서의 모호성을 포용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런 점에서, 형용사나 동사 대신 형용명사나 동명사를 사용하여 규정성을 강화시킴으로써 해석의 폭을 스스로 제약하는 경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는 보편적인 의미의 ‘선(善)’이라는 관념 자체를 뒤집기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을 ‘무의식’의 차원에서 뒤죽박죽으로 뒤섞지도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머리말에서 지적하였듯이, 상당수의 비평가들이 오해를 무릅쓰며 비판의 강박에 사로잡히고 있는 것은 우리 평단의 불건강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는 초월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의 최대치를 지향한다. 그에게 역사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못한 은폐와 왜곡이 고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현실적인 삶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결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