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결혼 생활의 불협화음을 화해의 이중창으로 바꾸어간
조양희 부부의 창찬 나누기, 그 일상의 작고 진솔한 고백들!
내 말을 끝까지 다 들어준 다음 얘기하는 모습, 당신은 참 좋은 습관을 지녔어.
어머니의 가르침도 가슴에 새기고 있는지라, 되도록이면 남편의 말이 끝난 후에 내 의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남편이랑 오해가 빈번할 때는 말을 다 듣고서 내 이야길 하는 편이 더 큰 다툼을 예방할 수 있다. 내 말 좀 먼저 들어봐요, 하고 우기다가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곡해를 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가 얘기할 때 다른 변명을 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나의 허물을 그 기회에 고친다고 생각하면서 참고 기다린다. 불과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인데 생사가 달린 것처럼 내 이야기만 얼굴 빨개져라 내뱉고 나면 남는 건 씁쓸함뿐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 생활이란 게 사람 됨됨이를 배워가는 훈련인 것 같다.
3월 12일 글 중에서
일요일에 할 일이 많은데도 영화를 함께 봐주겠다며 서울까지 나들이한 당신, 내가 선택한 영화를 불평 없이 즐겁게 감상해 준 당신, 그리고 따끈한 커피로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해준 당신, 사랑해요.
이렇게 무덤덤한 중년의 부부인 남편과 내가 냉장고에 붙여둔 그 광고지에 나온 영화를 보러 갔더니, 우리 자리가 하필 연인석이었다. 의자 사이에 팔받침대가 없는 걸 보고 우리는 낄낄 웃었다. 나는 불편하다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지만, 남편은 연신 연인석에 앉아 좋다며 싱글벙글이었다. 그가 보고 싶다던 영화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영화가 끝나 극장문을 나서는 길에 남편은 “아이고, 당신 허리라도 한번 감아볼걸 그랬네” 하며 아쉬워한다. 아직도 나에게 풋풋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당신, 고마워요.
3월 16일 글 중에서
손수건을 빨아 창문 앞에 널어놓은 당신. 하루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땀으로 스며든 손수건, 아내인 내가 빨아드렸어야 하거늘, 정말 미안해요.
쓰다가 던져둔 남편의 손수건을 만져볼 때면 아픔이 밀려온다. 유난히 더위에 약해 주렁주렁 땀방울을 달고 다니는 그인지라 손수건이 마를 날이 없다. 유난 떠는 딸아이와 어느덧 군대 갈 나이가 된 큰아들 녀석, 아직 철없는 막내 녀석을 떠올리면 피땀이 스며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세 아이가 무사히 성장하여 어른이 되기까지 남편과 나의 손수건은 쉴 틈이 없겠지. 앞으로 몇 장이나 더 필요할는지…….
남편이 직접 빨아서 창문에 널어놓은 손수건을 살펴보니 닳아서 올이 다 풀려 있었다. 얼마나 많은 땀을 훔쳤기에 손수건이 다 닳아버린 것일까. 낡은 손수건을 보니 마음이 안되고 해서 새 손수건을 몇 장 사다 놓았다. 그런데도 남편은 한동안 그 낡은 손수건만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남편은 손때 묻은 그 손수건에 자신의 고통과 번뇌가 그대로 녹아 있고, 그걸 사다 준 아내를 생각해서 오래오래 쓰고 싶다고 했다.
6월 25일 글 중에서
몇년 전 결혼 기념일에 일곱 색깔의 속옷과 호두파이를 선물해 주었던 당신을 칭찬합니다.
남편이 내민 그 상자 속에는 월화수목금토일로 지정된 형형색색의 속옷이 들어 있었다. 나는 모처럼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목요일의 진초록 속옷만은 정말이지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 초록 팬티를 어떻게 입어요?”라고 말해 버렸다. 남편은 “어째 가만 있나 싶었어, 그럼 그렇지” 하고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내심 섭섭했던지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 잠시 얼굴만 보고 온다며 휙 나가버렸다.
아이들과 나는 호두파이에 촛불을 켜고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은 새벽에야 나타났다. 나는 그날이 목요일이라서 그 유치한 진초록 팬티로 갈아입었는데 말이다.
7월 12일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