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지 마. 징제비의 문초가 하도 혹독해서,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맛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는 변명들을 나도 꽤 들어왔지. 하지만 틈이 전혀 없는데도 내가 아무 데나 쑤셔대는 걸까? 아니지. 너희를 무너뜨린 건 저 형구들이 아니라 오만함이야. 너희가 조금만 더 겸손했다면,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봤다면, 그래도 결국 내가 너희를 골라냈겠지만, 좀더 고민을 했을 테고 시일이 걸렸을 거야. 사람이란 게 참 묘한 짐승이라서, 숨길 여유가 있더라도 전부 다 숨기지 않고 꼭 한두 개씩을 놔둬. 딴것들은 찾더라도 이건 못 찾을 거야, 이딴 오만을 품는 거지. 그런데 또 웃기는 사실은 옹기꾼 천주쟁이들이 지닌 그런 오만의 방식이 엇비슷해. 자, 그게 뭘까?”
<2-1‘十’> 중에서
“천주에 대한 믿음을 논파하려면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을 깨는 건, 이 잔을 부수는 것보다도 쉽고 간단합니다. 의심과 실망. 저는 주로 그 둘을 이용합니다. 신유 대군난 세 친구를 예로 들어볼까요. 처음에 세 사람은 천주에 대한 믿음과 친구에 대한 믿음 둘 다를 지키려 합니다. 둘 중에서 친구에 대한 믿음만 먼저 살짝 흔들어줍니다. 야고버에겐 베드루가 널 많이 걱정한다고 하고, 베드루에겐 요안이 널 많이 걱정한다고 하고, 요안에겐 야고버가 널 많이 걱정한다고 합니다. 친구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이야길 들으면 한편으론 고맙지만, 다른 한편으론 내 믿음이 훨씬 강한데 왜 그딴 걱정을 할까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은 생기는 법입니다.
그다음엔 베드루가 한 이야기를 야고버에게 들려주고, 야고버가 한 이야기를 요안에게 들려주고, 요안이 한 이야기를 베드루에게 들려줍니다. 그 말이 맞느냐 틀리냐 따지지 않고 그냥 들려만 주는 거예요. 세 친구는 각자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나랑 생각이 조금 다르네. 이건 내 기억엔 없는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틈이 만들어졌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미세하지만, 틈이 전혀 없는 벽과 실금이라도 희미하게 있는 건 아주 큰 차이죠.” <2-2‘울음에 대하여’> 중에서
그다음엔 베드루가 한 이야기를 야고버에게 들려주고, 야고버가 한 이야기를 요안에게 들려주고, 요안이 한 이야기를 베드루에게 들려줍니다. 그 말이 맞느냐 틀리냐 따지지 않고 그냥 들려만 주는 거예요. 세 친구는 각자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나랑 생각이 조금 다르네. 이건 내 기억엔 없는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틈이 만들어졌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미세하지만, 틈이 전혀 없는 벽과 실금이라도 희미하게 있는 건 아주 큰 차이죠.” <2-2‘울음에 대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