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제가 남을게요. 징제비도 그렇고 또 그 사람도 저를 원해요. 제가 붙들린다면 반나절 아니 하루 정도는 관심을 돌릴 수 있을 거예요. 두 분은 하실 일이 아직 많잖아요? 제가 남을게요. 남게 해주세요.”
소인정이 틈을 보이지 않고 잘랐다.
“내 말 똑똑히 들어. 넌 결코 잡혀선 안 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꼭 지키겠다고, 십이 년 전에 야고버와 나는 천주님께 맹세했단다. 들녘도 널 지키려고 목사동 골짜기에 남은 거야. 명심해.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모두 목숨을 잃는대도 너만은 살아남아야 해. 다쳐서도 안 되고 붙잡혀서도 안 돼.”
<3-1‘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이야기’> 중에서
“전라도만이 아닙니다. 한양에도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해 군난 후 잦아들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언제부터?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단 겐가?”
“이 년도 훨씬 지났습니다. 사학죄인들이 갑자기 늘었고 교우촌끼리 왕래하는 움직임도 잦아졌습니다. 아무래도 탁덕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탁덕이 들어와? 당장 붙잡아야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조정에서도 사학죄인들을 비호하는 무리가 있는 것 같고…… 어설프게 덮쳤다간 탁덕도 못 잡고 낭패만 볼 수도 있습니다. 차근차근 물증을 확보해서 단숨에 숨통을 끊어야 합니다.”
<3-2‘옥에서 글을 쓰고 옥 밖으로 전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