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은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입니다. 왼쪽에는 바로 앞 페이지에 웹스터가 그린 표지 그림을 꾹꾹 눌러 인쇄한 흔적이 희미하게 넘겨다 보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판권 사항이 조그맣게 적혀 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책을 누구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가족도 친구도 아닌 ‘TO YOU’라는 글자만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책이 다른 누구도 아닌 독자 모두에게 전하는 웹스터의 사랑 편지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정말 부르고 싶은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책이 금세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 <『키다리 아저씨』 너무나 사랑스러운 연애편지> 중에서
난파한 배에서 간신히 탈출한 아이들은 섬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가장 먼저 이 섬을 식민지로 선언합니다. 미국인 한 명, 프랑스인 두 명, 영국인 열한 명으로 구성된 국적을 고려하여 섬의 지명을 정하며 세 개의 곶을 각각 ‘미국 곶’ ‘프랑스 곶’ ‘영국 곶’으로 명명하는 외교적 수완, 일명 ‘나눠 먹기’도 보여줍니다.
소년들이 우두머리를 뽑으며 ‘치프(chief)’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이곳이 제국주의 본국과 연결된 ‘지부’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점은 이 ‘치프’를 뽑을 때 학교에서 배운 문명인의 양식인 투표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흑인 견습 선원 모코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 꼼꼼한 차별 의식입니다. 삽화에서 소년들은 부유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인 반면 하단 중앙의 모코는 초라한 행색이죠..
― <『15소년 표류기』 모험과 도전, 아이들만의 세상> 중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천신만고 끝에 나쁜 마녀를 무찌른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는 다시 오즈를 찾아가지만 결국 강아지 토토의 활약으로 오즈는 마법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허탈해합니다.
그럼 도로시와 친구들의 모험은 의미 없는 헛수고였을까요? 그랬다면 이 책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톱밥 두뇌, 양철 심장, 가짜 물약과 같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오랜 고난과 역경을 통해 최종적으로 ‘얻어진’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 <『오즈의 마법사』 마법으로 연 20세기의 환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