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의 마지막」 중에서
타자기 앞에 앉아 있던 병사가 노란 주전자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섰다. 마치 주전자로 나를 내려칠 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내민 물잔을 잡은 내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두 손으로 받쳐 들었지만 따르는 물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겨우 몇 모금 마시자, 물이 순식간에 방광으로 들어간 듯 속옷을 한 방울씩 적시는 느낌이었다.
“너, 빨갱이지?”
“절대로 아닙니다. 육군 소위 한서진입니다.”
살아야 한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한다. 빨갱이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나는 빨갱이가 될 수 없다. 내 핏속에 빨갱이가 될 수 없는 인자가 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할 것이다.
— 「긴급 호송」 중에서
— 「적인종」 중에서
“최고로 멋진 복수를 하려고요.”
군의관은 고개를 저었다.
“지나치게 운동하다 몸을 버리는 수가 있어요. 뭐든 적절한 게 좋지요. 강한 몸보다는 유연한 몸을 만들어야 해요. 고수들은 유연한 몸짓으로 상대를 제압하죠. 독사는 몽둥이보다 회초리로 후려쳐야 하고 날아다니는 파리는 몽둥이로 잡는 게 아니라 파리채로 잡듯이 말이죠. 운동을 지나치게 하다가는 탈이 나기 십상이죠. 몸을 강하게 만들기보다 유연하게 만들어요.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삵처럼 단숨에 급소를 물 수 있게 말이죠.”
— 「복수, 복수, 복수」 중에서
스님과 입씨름을 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나는 스님이 내미는 염주를 들고 미륵불 앞에 엎드려 간절하게 빌었다. 완벽한 복수를 하게 해달라고.
— 「마지막 시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