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잘못 ‘싸우고’ 있다
갈등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갈등의 정도가 낮은 것이 곧 행복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갈등의 부재는 끈끈한 관계를 암시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관계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혼중재 조사 프로젝트가 진행한 한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혼한 부부 대다수가 점점 멀어지다 친밀감을 잃은 것을 결별의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직접 연구를 진행한 결과, 커플들은 어떤 유형의 ‘갈등 스타일’을 가지고 있든 누구나 행복하게 오래가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관계가 잘될지 깨질지를 가르는 것은 갈등의 유무가 아닙니다. 행복한 부부들도 싸웁니다. 중요한 점은 어떻게 싸우느냐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관계의 미래는 다투는 방식에 달려 있다
파트너 사이의 영속적인 문제는 대체로 성격과 라이프스타일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커플이 서로의 차이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오히려 파트너를 자신처럼 바꾸려고 하다가 잘 안 되면 파트너를 비난하면서 관계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때는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이런 성향 차이가 나중엔 마찰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이의 즉흥성에 마음이 끌렸어요”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왜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대로 밀고 나가질 못해?”
“활달한 성격과 뛰어난 유머 감각에 끌려 그녀에게 푹 빠졌어요”라던 사람이 이제는 이렇게 불만스러워합니다. “당신은 파티에 가면 그렇게 꼭 사람마다 다 붙잡고 얘기를 나눠야겠어?”
― <1장 갈등 없는 커플이 더 위험하다 > 중에서
건강한 파트너 관계 사이에 있을 법한 ‘갈등 스타일’에는 회피형, 수긍형, 발끈형이 있습니다. 세 유형 모두 절대적인 것이기보다 스펙트럼상의 한 지점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 유형 중 하나에 100퍼센트 전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디쯤에 있으면서 이쪽저쪽으로 쏠립니다.
⋅회피형
갈등적인 대화를 아예 안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해’ 속이 상할 만한 대화의 수렁에 빠지기보다 평화를 지키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
⋅수긍형
싸우기는 하지만 정중히 싸웁니다. 함께 문제점을 의논하며 타협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그 의견 차이를 다루길 꺼려 하지 않습니다.
⋅발끈형
상대적으로 갈등의 분출이 더 잦고 더 뜨겁게 달아오르며, 대체로 더 격하고 극단적입니다. 감정의 표출에 관한 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정의 표출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2장 왜 우리는 비슷한 패턴으로 싸울까?> 중에서
연결 시도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파트너가 서로 단절되어 있으면 어떤 싸움이라도 험악하게 번질 수 있습니다. 서로 오해를 해서 아주 나쁘게 해석하는 경향이 더 높아집니다. 서로 선의로 해석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게 아니라 파트너나 파트너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렌즈를 갖기 쉽습니다. 정서통장의 잔고가 마르면 우리는 4가지 독(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에 더 잘 기대게 됩니다.
최근 당신과 파트너가 심해지거나 악화된 갈등 때문에 문제라면, 다음 질문에 답해 보세요.
⋅최근에 파트너에게 보낸 연결 시도들이 반응을 얻고 있나요?
⋅파트너의 연결 시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최근에 외면하거나, 심지어 등을 돌리는 식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지 않나요?
⋅지금 정서통장이 얼마나 채워져 있나요?
― <3장 도대체 무슨 일로 싸우는 걸까?> 중에서
거칠게 시작하기는 아주 흔한 문제입니다. 저희가 최근에 4만 쌍을 대상으로 벌인 세계적 조사에서도 성정체성을 막론하고 상담치료를 시작하는 전체 커플의 90퍼센트가 거칠게 시작하기와 그 말이 파문이 되어 일어난 뒤탈로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힘든 적이 없었던 커플은 드물었습니다.
거칠게 시작하기는 대체로 주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 비난으로 시작한다.
해당 상황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② 자신이 아닌 상대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상대에 대해 말하면서 상대의 온갖 잘못을 들먹이는 식으로 싸움을 걸 때가 많습니다.
③ 그동안 꾹꾹 눌러둔 다른 응어리들까지 무더기로 끄집어낸다.
한 가지 문제만 처리하지 않으려는 경향, 즉 신경 쓰이는 다른 문제를 한 무더기로 쌓아서 처리하려는 식입니다.
― <4장 폭탄 던지기 | 갑자기 거칠게 시작하기> 중에서
홍수(flooding)는 우리가 파트너와 갈등을 벌이던 중 파트너의 부정성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자신이 신경계로부터 장악당해 주체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저희가 사랑실험실에서 커플들을 지켜본 것처럼, 커플 사이에 홍수 상태가 나타날 경우 개입해 주지 않으면 두 사람은 불화의 수순으로 나아갑니다. 홍수에 빠지면 잘 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홍수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정보 처리 능력을 급속도로 잃기 시작합니다. 주의를 기울이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관계를 망치는 독들을 동원합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대체로 파트너가 네 번째 독(담쌓기)을 사용하고 맙니다.
― <5장 공격과 방어 | 급발진하다가 확 마음 닫기> 중에서
마뉴엘과 샤나에는 몇 년째 똑같은 싸움을 반복 중이었습니다. 다른 인종끼리 결혼한 부부인 두 사람은 30대 후반이고, 결혼한 지는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집중 부부치료를 받으러 저희를 찾아왔을 무렵 자신들의 입장이 어떻고 싸움이 왜 벌어지는지 이야기하는 데 막힘이 없었죠. 그 점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백 번이나 따져댔으니까요.
싸움의 원인에 관한 한 둘 사이에 이견이 없었습니다. 부부의 말로는, 선물하기와 돈 문제가 싸움의 원인이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확실히 둘 다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문제는 그 원인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내놓는 해결책마다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또다시 똑같은 쟁점으로 되돌아오는 상황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며 교착상태에 빠진 갈등으로 한 발짝도 진전이 없이 막혀 있는 커플이면, 앞으로 나아갈 게 아니라 잠시 멈춰서 진정을 시키고 더 깊이 파헤쳐 들어가야 합니다.
― <6장 수박 겉핥기 | 피상적인 문제를 반복하기> 중에서
아무리 사랑과 갈등에 대해 40년에 걸쳐 연구를 해왔더라도 저희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커플들 못지않게 잘못된 싸움에 취약했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 후의 저희는 남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저희에겐 싸움을 다룰 방법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이 짜여 있었으니까요.
우선 진정할 것. 저희 부부도 싸움을 벌인 그날 밤에 바로 싸움을 수습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격분해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홍수에 빠지면 이 5단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시야를 넓혀, 연극 관객이 2층 관람석에 앉아 무대 위의 연극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짚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차분한 상태에서 그 연극에서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기억나는 대로 지켜보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 날 저희 부부는 둘 다 차분해져서 그렇게 거리를 두는 관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싸움을 수습할 5단계를 이어갔습니다.
1단계: 감정을 이야기하기
2단계: 현실을 인식하기
3단계: 촉발제를 알아차리기
4단계: 책임을 인정하기
5단계: 건설적인 계획을 세우기
― <8장 과거의 덫 | 예전 일을 끊임없이 들춰내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