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을 현장에서 목격한 자가 있고, 게다가 그가 무관이라고? 그런데 어찌 강도들이 여주의 촌사람만 칼로 찔러 죽였단 말인가?”
“지금 대감마님께옵서 하신 말씀이 바로 저희 형제가 품은 의문입니다. 귀인과 비인(鄙人)이 한시에 품은 의문을 어찌 형조의 관원들만 무시하고 지나쳤는지 그 연유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만취해 곤드라져 봉변을 면했다지만 김원위는 그때의 정황을 묻는 저희를 피하며 만나주지 아니하니, 속일을 명명백백히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삼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판서가 대기시켰던 사인교를 불렀다. 다음 달 초면 그는 사은사로 국경을 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물밀어 드는 피로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이립한 참의와 정랑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건을 원점으로부터 다시 엄밀하게 수사하도록 하라!”
-「서(序)」 중에서
전방유는 어려서부터 그리 결기 있는 성정이 아니었다. 나무 타기 같은 흔한 놀이는 물론 나무칼 한번 잡아본 적 없었다. 다섯 살에 『논어』를 읽었으나 여덟 살까지 야뇨증을 앓았고, 열 살에도 밤에 한뎃뒷간을 혼자 가지 못했다. 귀신이 무서웠고 마누라도 무서웠고 자식들도 열다섯 살이 넘어가니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 형조의 거칠고 사나운 선임들과 동료들에게 행여나 맞서 대거리할 수 있었겠는가?
전방유는 일 년 하고도 절반을 꼬박 얼뜨기 좌랑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형조의 외돌토리였기에 느닷없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 까마득히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죽은 사람과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시체를 보았다든가 재로 덮어 봉인한 시신을 꺼냈다든가 하는 표현은 적합지 않다. 그를 만났다. 얼마 전까지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먹고 마시고 웃고 화내며 살아있었던 한때의 사람을.
-「죽은 자의 말」 중에서
돌이켜보건대 계집은 특별한 기술을 썼다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해 공격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저울로 가늠질할 수 없는 바람의 요사였다.
윤 선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련한 초저녁 달빛 아래서 뜯어보니 계집은 생각보다 앳되고 호릿하였다.
“더 이상의 시험은 없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거칠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계집은 성큼 발을 내딛어 윤 선달을 향해 다가왔다. 협기든 객기든 쓸개자루가 크기로 소문난 윤 선달이 일순 움찔했다. 계집의 몸에선 분내도 땀내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쇳내 같은 것이 진하게 풍겨났다. 계집이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이 말했다.
“원수를 갚으려 하오. 도와주시오!”
-「바다의 도장」 중에서
“나리! 이것 좀 보십시오!”
오작의 흥분한 목소리가 홀로 탄식하는 전방유의 귓전을 때렸다. 재미든 흥미든 호기심이든 정의감이든, 연유야 어쨌거나 그들은 죽은 자의 말을 끝내 듣고자 하는 마지막 산 자였다.
“이 모양은……!”
전방유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강도라고요? 어느 강도가 이런 솜씨를 돈푼을 뺏는 데 쓴답니까?”
“왜 그러는가?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느냐?”
오작이 눈을 희번덕이고 율생은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오작을 다그쳤다.
“시형도를 다시 그려라. 시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꼼꼼히 살펴 칼자국을 헤아리고, 팔목과 손바닥의 상처를 확인하고, 상처 하나하나의 길이와 너비와 둘레와 빛깔과 부어오른 정도를 세세히 기록하라!”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자상은 일곱이 아니라 여덟이었다.
-「수사」 중에서
“성상의 교지가 아래의 정황을 헤아려 살피지 못하신 듯합니다.”
사헌부 집의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돋웠다. 이대로라면 대군을 비호하는 임금의 의지에 밀려 사건은 미제가 되어버릴 터였다.
“대낮에 도성 한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어찌 여인이 홀로 벌일 수 있겠습니까? 듣기로 궁노들은 여럿이서 도당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무관인 간증조차 친구가 죽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두려워 겁을 낼 뿐 감히 구하려 들지 못한 것입니다. 잔악한 범인에게 아무리 무리를 캐묻는대도 순순히 사실을 토설할 리 있겠습니까? 대군궁의 수노에게 듣고자 하는 것은 수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단지 그로 하여금 고발케 하여 살인을 공모한 죄인을 얻고자 할 따름입니다!”
간곡히 그리고 강경히 주청해도 임금은 끝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형장으로 돌아갔다.
-「대군궁의 궁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