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데올로기에 찢기고 천민자본주의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길을 걸으며 역사의 빛을 만들어낸 이들의 삶을 조명하다
새벽 어스름이 스러져가고 있는 한겨울 들판을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밤새 무성하게 돋아난 서릿발로 세상은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발가벗은 미루나무의 앙상한 잔가지들이 바람에 쓸리며 춥게 떨고, 벼 그루터기들만 남은 들녘은 폐허처럼 황량하기만 했다. 어스름 저편으로 아슴푸레하게 먼 야산도 추위에 웅크린 듯 초라했고, 그 품에 보듬긴 마을은 인적 없이 깊은 적막에 묻혀 있었다.
그 추위 속에서 몇 마리의 새가 낮게 날고 있었다. 새들은 거센 바람에 밀리듯 허약한 날갯짓을 하다가 내려앉고 다시 조금 날아가다가 내려앉고 했다. 검불만 날리고 있는 얼어붙은 들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새들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굶주림에 쫓겨 따스한 둥지를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한 군데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고달프고 힘겨운 날갯짓을 계속하며 자리를 옮기고 또 옮기고 있었다.
먹이 귀한 황량한 겨울 들녘에서 그 새들은 너무 미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 살벌한 삶의 터전에서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얼어죽기도 하고 굶어죽기도 할 것이다. 또, 근근이 연명해 가다가 어떤 큰 새에게 잡혀 먹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차는 그까짓 새들은 아랑곳없이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북쪽으로 맹렬하게 달리고 있었다. 기차는 연기만 검게 토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대가리에서부터 꼬리까지 몸체 전부가 까만색이라서 육중하고 우람해 보이는 한편 무슨 괴물이 내닫고 있는 것처럼 흉물스럽기도 했다.
“어허 참, 올 농새가 흉년 들라구 그라나 어쩔라나 어찌 한겨울개 눈이 통 안 온대여.”
기차 유리창에 낀 성에를 소매 끝으로 더 넓게 닦아내며 충청도 남자가 중얼거렸다.
—「산비탈 까치집」 중에서
남천장학사의 설은 언제나 음력설로부터 닷새 뒤였다. 그날이 남천장학사의 운영주이며 국회의원인 강기수에게 기숙생들이 단체로 세배를 올리는 날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정부가 음력과세 완전폐지를 실시해 온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고, 국민들은 약을 올리기라도 하는 듯 그 외침을 귓등으로 들어넘기며 그저 음력설을 쇨 뿐이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화풀이라도 하듯이 음력설에 문을 닫는 상점들은 모두 처벌한다는 으름장을 놓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지엄한 처벌령을 한갓 엄포나 허풍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전국의 상점 주인들이었다. 죽이든 살리든 어디 맘대로 해봐라 하는 식으로 모두가 문을 닫아거는 판이니 그런 배짱들 앞에서 처벌의 칼이 휘어질 도리밖에 없었다.
“음력설을 쇤다고 나라가 망하기를 하나, 양력설을 쇤다고 나라가 흥하기를 하나. 내 원 참, 빌어먹을…….”
“두말하면 잔소리지. 배곯는 국민 잘살릴 궁리는 안 하고 왜 설 가지고 이리 시비야, 시비가. 도대체가 이율 모르겠다니까.”
“아니, 따지고 보면 양력설이란 게 왜놈들 설 아니냔 말야. 왜색 없앤다고 떠들어대면서 설은
왜 왜놈들 설을 쇠라고 이 난리판굿이야 그래.”
어느 도시 어느 지방에서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야유하고 이죽거렸다. 그 비아냥거림에는 단순히 음력설을 못 쇠게 하는 데 대한 불만만이 아니라 정권을 불신하고 비난하는 민심이 실려 있었다. 사실 정부는 음력설을 폐지하고 양력설을 쇠게 하는 데 있어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그 어떤 명분이나 이유를 전혀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의(民意)에 충실히 호응이라도 하듯 강기수는 국회의원 신분이면서도 꼬박꼬박 음력설을 쇠고 있었다. 그는 음력설이면 꼭 고향 행차를 했다. 거기서 사흘을 머무는 동안 한껏 위세를 과시하며 유지들을 두루 접견하고, 자기 사업장을 순시하고, 지역구의 조직장들을 독려한 다음 나흘째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닷새째 점심나절에 남천장학사의 기숙생들은 줄지어 그의 집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다.
—「분노와 비애」 중에서
“니기럴, 요놈으 시상이 워찌 이러냐. 우리 아부지도 나도 죄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디……. 또 하로가 샜응께 나가는 봐야제.”
천두만은 불 꺼진 꽁초를 물고 커다란 바위를 밀어올리듯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밤새도록 추위에 시달린 몸은 아침마다 그렇게 무겁고 뻑뻑했다.
움막을 벗어난 천두만은 눈을 비비며 새끼줄부터 살폈다. 움막보다 다섯 배쯤의 넓이로 둘러쳐진 새끼줄은 누가 손댄 흔적 없이 팽팽했다.
“요 땅을 목심 걸고 잘 지켜야 써. 돈 벌어 여그다 판잣집 세와야 헐 것잉께. 어리빙허다가 요 땅 뺏게부는 날에는 참말로 알거지 되는 판잉께. 안직 초장이라 이만헌 땅이라도 차지허는 것이제 2~3년, 아니시, 1년만 지내면 저 꼭대기꺼정 한 치 땅도 안 남을 것이여. 항, 나가 여그 오기 2년 전만 혀도 200호 남짓이었는디 그간에 500호가 넘었단 마시. 무신 말인지 알아묵겄제?”
움막을 치던 날 나삼득이 힘 꽁꽁 쓰며 한 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천두만은 아침저녁으로 거르지 않고 새끼줄을 살폈다. 나삼득의 말은 틀리지 않아 두어 달 사이에 벌써 자신의 움막 위로 스무 개가 넘는 움막들이 생겨나 있었다. 그런데 새끼줄도 제 욕심껏 넓게 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동네 초입에서 구멍가게에다 연탄장사까지 하고 있는 최 씨가 금을 그어주었다. 산동네에서 제일 부자라는 그는 통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새끼줄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가끔 이동을 해 쌈박질이 벌어지고는 했다. 더러 욕심 많은 사람들이 부실하게 박혀 있는 각구목이나 막대기를 밤새 살짝 옮겨 박고는 했던 것이다.
천두만은 새끼줄을 따라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안개가 끼어 한강은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했다. 이 산동네에 사는 유일한 맛이 있다면 아침마다 한강을 한눈에 바라보는 거였다. 그는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기차로 처음 한강을 건널 때의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는 했다.
그려, 기연시 성공얼 혀야제. 당당허니 고향에 내래가게 돈 많이 벌어야제.
—「움막촌 사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