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나는 늪지에서 살해당한 불쌍한 여학생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것이 누군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희생자가 조이의 친구인 타라가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누군가의 친구이고 누군가의 딸일 것이다. 사건이 무시무시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비극이 오직 다른 사람들에게만 벌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몰래 기도한다. 하지만 마리아나는 비극이 언젠가 누구에게든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_ 58쪽
조이는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마리아나는 조이의 뺨이 붉게 물들고 눈이 커지는 걸 봤다. 아이의 눈이 보였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간직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고 싶지만, 말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자그마한 소녀. _ 78~79쪽
마리아나는 유년기는 반응을 보여주는 경험이라고 믿는다. 그 말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경험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먼저 공감을 목격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내게 공감해주는 사람은 부모거나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이다. 타라를 죽인 사람도 한때는 어린아이였다. 누구에게서도 공감이나 친절을 느껴보지 못했던 소년. 그는 고통을 겪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고통을.
물론 많은 아이가 그렇게 끔찍하게 학대당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도 그들 모두가 살인자가 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예전에 마리아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린 시절을 구원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친절, 이해와 인정. 어린아이의 현실을 알아보고 이해해줄 수 있는 어떤 사람. 그리고 아이의 정신을 구원해줄 사람. _ 130쪽
그에게 어울리는 건 오직 연민과 두려움이었다. 만일 그녀가 마음속에서 그런 감정을 불러낼 수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의 카타르시스를 구성하는 바로 그 자질이다. 그렇지만 마리아나는 연민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이 미치광이를 많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움은 느끼고 있었다. _ 227~228쪽
“<말피 공작부인>에 나오는 대사죠. ‘그녀의 얼굴을 덮어라, 내 눈이 부시니……’.”
“그래요.” 테오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흥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글쎄요, 저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내 눈이 부시니’ 범인은 시체들을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겁니다. 우리 눈이 부시게 하기 위해서요. 두려움으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한 거죠. 이유가 뭐죠?”
“몰라요.”
“생각해봐요. 범인은 왜 우리의 눈을 멀게 하려는 거죠? 그가 우리는 보지 못했으면 하는 게 뭘까요? 그는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까요? 그 질문에 대답을 찾아요, 마리아나. 그러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_ 302~3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