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으면 성공한 게 아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 존재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큰 스트레스와 맞닥뜨리면 우리는 순식간에 온몸이 각성하여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동물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인 0.2초 만에 발생하고, 안정은 숨 한 번 들이쉴 시간인 5초 만에 취할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스트레스에 무너지는 것도 스트레스로부터 회복하는 것도 모두 순식간에 이뤄지는 일입니다. 그 순식간에 우리가 자신의 몸에 어떻게 개입하는가에 따라 인간성을 유지하거나 동물성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지요.
5초 안에 심호흡을 하며 몸을 이완시키면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심호흡은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는 방법입니다.
― <2장 몸_ 생존 모드에서 성장 모드로> 중에서
저는 마음을 부활절 달걀에 비유합니다. 부활절 달걀 껍데기에 그려진 그림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 줄거리(생각)이고, 달걀 속 노른자는 바로 그때 느꼈던 감정입니다.
지금도 저는 어릴 적 아버지와 나들이를 처음 나갔던 날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먹었던 일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 생각을 꺼내보면 그날 하루 동안 제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존경, 고마움, 든든함 등이 다시금 느껴집니다. 이후 사춘기에는 아버지가 초라하고 불편하고 슬퍼 보였지요. 그러나 더 훗날이 되자 아버지는 존경스럽고 그리운 존재로 제 마음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선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다양한 마음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제 마음에는 어머니, 아내, 또 그 외의 많은 사람 및 사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모두 들어 있습니다. 어떤 마음에는 긍정적 감정이, 어떤 마음에는 부정적 감정이 담겨 있지요. 물론 이 둘을 동시에 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 많은 마음이 있다 보니 우리가 자기 마음을 다 모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마음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자기 마음이 변덕스럽게 여겨지고 갈피를 잡기도 어려운 것이지요
― <4장 마음_ 내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 중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비법은 무상무념(無想無念), 즉 마음을 비우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차선책이 권장되어왔나 봅니다. 바로 명상입니다. 저는 명상을 하려 하면 생각이 사라지기는커녕 자꾸 잡념이 생기고 내 안을 비집고 들어와 헤집는 통에 마음이 더 괴로워지더군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번째 방책인 무상무념과 차선책인 명상도 하기 어려워진 저는 세 번째인 차차선책을 택했고, 여러분께도 이 방법을 권해드리려 합니다. 바로 호상호념(好想好念), 즉 좋은 마음을 많이 지니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생각을 많이 하고 또 잘하는 존재이니, 그 능력을 자제하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반대로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의 방법입니다. 이는 생각을 조정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 <5장 긍정심_ 긍정의 닻을 내려라> 중에서
가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중 물건의 상품가격과 같은 객관적 가치, 다른 하나는 주관적 가치입니다. 주관적 가치는 오로지 우리 각자가 저마다 매기는 것입니다.
누가 제게 5,000원짜리 커피 한 잔을 건네줍니다. 저는 그 커피를 받고 그저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사례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그 커피의 객관적 가치뿐 아니라 그걸 건네준 사람의 마음 씀씀이까지 본다면 훨씬 더 큰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저를 생각해서, 제가 좋아할 것이라 느껴져서, 굳이 카페에 들러서, 한 손에 커피를 든 채로, 행여나 식을까 종종걸음으로 와서 제게 그것을 전해준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가요.
이처럼 고마움은 ‘발견(發見)’하는 것입니다. 시선가는 대로 그냥 뭔가를 보는 일이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고 노력할 때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는 일이 발견이지요. 발견은 없는 것을 꾸며내는 게 아닙니다.
― <7장 고마움_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차리기> 중에서
실제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니까요. 가령 부부가 다툴 땐 자신보다 서로를 탓하고, 자녀가 말썽을 부리면 자녀를 고치려 하며, 직장이 마음에 안 들면 직장을 바꾸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한 이런 것들은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는 내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됩니다. 부부 싸움이 나는 데 내가 미친 영향은 절반까지야 아니라 해도 최소한 10퍼센트쯤은 될 것입니다. 자녀가 말썽을 일으키게 되기까지 부모가 끼친 영향은 절반을 훌쩍 넘겨 90퍼센트가량에 이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장 또한 내가 포함된 곳임을, 그래서 직장에서의 문제엔 분명 내가 영향을 미친 바도 있을 거란 점을 알아야 합니다.
내 문제에서 나를 제외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얻지 못합니다. 비록 문제의 원인에서 내가 차지하는 바는 1퍼센트에 불과하다 해도, 그 1퍼센트를 바꾸지 않으면 나머지 99퍼센트가 달라질 확률 또한 낮아집니다.
― <8장 의미_ 나를 알고 우리로 나아가기> 중에서
우리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정서적 중립 상태에서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서적 중립 상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무덤덤함과 담담함입니다. 무덤덤함은 감정을 아예 못 느끼는 상태를 지칭합니다. 누가 옆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무반응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어도 맛있다는 말 한마디가 없고, 좋은 옷을 사줘도 무표정입니다. 그래서 무덤덤한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공감력이 있을 리 없고, 공감하지 못하면 소통이 안 될 뿐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담담함은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느꼈더라도 곧바로 편안함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감정 분포도에서 볼 수 있듯, 만감이 교차하는 중앙에서 외부 자극에 휘둘리지 않으며 중심을 잡고 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지요.
무덤덤함은 무딘 사람이, 담담함은 무던한 사람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무덤덤이 아닌 담담함을 유지하세요
― <9장 자기_ 내 안의 고요한 중심을 잡기 > 중에서
누군가를 배려하고 돌보는 것을 마치 희생과 헌신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배려하고 돌보는 순간만 보면 당연합니다. 물질이 되었든 정신이나 마음이 되었든, 나에게 있는 무언가를 남에게 주면 내겐 그만큼 마이너스가 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배려와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 앞에 선뜻 나서지 않고 망설입니다. 그러다 보면 배려와 베풂에 점차 인색해지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소인은 바로 코앞에 놓인 것만 볼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느끼는 역량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지요. 그와 달리 소인배는 이익을 단기간으로, 또 지엽적으로만 따지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추구합니다.
‘어른스럽게 성숙했다’는 말은 좀더 멀리 내다보고 폭넓게 헤아릴 역량이 생겼음을 뜻합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은 어른은 ‘당신한테 이로운 것은 결국 내게도 이롭다’는 통 큰 헤아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의 이익에 기여하는 게 바로 홍익(弘益)이고, 그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대인(大人)입니다.
― <11장 공동체_ 누군가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