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속물이 된다는 것은 꿈을 포기한다는 것과 결코 같은 뜻이 아니다. 다만 현명하게 속물이 된 사람은 꿈을 ‘무지개 너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이 닿는 곳부터 찾기 시작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금리가 높은 적금을 찾아 붓기 시작함으로써 부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경력을 철저히 관리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등의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배우들을 잘 구슬리는 최고의 진행 요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CEO를 꿈꾸면 당장은 복사와 서류 정리의 달인이 되는 게 먼저다.
―「20대에 속물이 되어야 30대에 고단하지 않다」중에서
선택은 곧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를 새로 프로그래밍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앞서 ‘이 결정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선택의 기준을 같게 여기기 쉽지만, 의외로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불행한 선택을 하고 마는 여자들이 많다. 의외로 내가 끌리는 일과 내게 좋은 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므로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더라도 지금 당장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말라. 그 결정은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시키는 것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당신보다 더 부유하고, 능력 있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에게서 힌트를 구하라. 당신이 원하는 삶의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만의 인식의 설계도를 그려라.
―「운명은 주입식이다」중에서
당신 운명을 ‘좋은 팔자’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를 귀족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 자신이 비참함과 초라함을 느끼도록 방치하지 말라. … 가끔 젊은 날의 치기로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설마 누가 그럴까 싶겠지만 수많은 20대가 비참한 상황을 자처하며 인생을 배우는 거라고 말한다. 때로 그것을 ‘헝그리 정신’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헝그리 정신이라는 말을 남발하다가 평생 ‘헝그리’ 하게 살아가기 십상이다. 20대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에너지는 그런 데 허비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귀족으로 대접하라」중에서
인내, 곧 ‘참는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즉 ‘견디는 것’과 ‘계속하는 것’이다.
전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내게 모욕을 줄 때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못 들은 척하는 것이 ‘견디는 것’이다. 후자는 하고 있는 일을 멈추게 하는 갖가지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말 그대로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서 ‘견디는 것’은 잘하지만 ‘계속하는 것’은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소양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이다. 자신은 인내심이 뛰어난데 왜 되는 일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는 여자들은 인내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견디는 것’을 잘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불행을 찾아다니는 여자들에게 발달해 있는 능력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고통을 견디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그녀들은 나름대로 인내의 달인들이다.
당신이 원하는 삶을 누리고 싶다면 당연히 ‘계속하는 것’을 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인생은 한 방이다?」중에서
똑똑한 여자들은 못난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즐기기보다는, 결국 못난 무리 속의 하나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부유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애쓴다. 그건 그 사람들의 덕을 보거나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녀들은 누구나 자신이 속해 있는 무리를 닮아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닮고 싶은 사람들로서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할 따름이다.
이 미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갖춘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적대감부터 거두기를 바란다. 그들에게는 당신이 배워야 할 무언가가 있다.
―「좋은 물에서 놀아야 좋은 고기를 만난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