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로 『논어』를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이 나라의 정치권과 공직사회가 보여준 각종 사건과 행태들은 역설적이게도 이 작업을 보다 가속화하는데 추동력이 되어주었다. 사회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신뢰(信賴)의 붕괴 또한 『논어』가 수없이 경계하는 사안이다. 물론 『논어』가 국가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인간들이 모여서 어떤 사회와 국가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데 있어 『논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인문학(人文學)이다.
기존의 도덕 교과서식 해석을 버리고 『논어』로 풀어낸 『논어』를 접하는 순간, 이런 생각은 훨씬 분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논어』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다면 지난 5년여 간의 악전고투도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말_ 왜 『논어』인가?」 중에서
子曰(자왈)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 有朋(유붕)이 自遠方來(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 人不知而不?(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
공자는 말했다. “(문을) 배워서 그것을 늘 쉬지 않고 반복해 익히면 진실로 기쁘지 않겠는가? 뜻이 같은 벗이 있어 먼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진실로 즐겁지 않겠는가? (이런 자신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 서운해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진실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學而時習(학이시습)은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과 정확하게 맥이 통하고, 자기혁신에 좀 더 강조점을 두자면 『대학(大學)』에 나오는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과도 같은 뜻이다. (문을) 배워 그것을 부지런히 (몸에) 익히지 않고서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進就) 못하기 때문이다. 유학이 제시하는 인간 상(像)은 그동안 잘못 이해한 바와 같이 ‘에헴!’ 하며 도덕이나 논하고 체면이나 차리는 인간상이 아니라, 이처럼 부지런히 배우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해가는 인간상이라는 점을 『논어』의 첫 구절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배우고 익히는 일은 즐겁기보다는 힘겨운 일이다. 그런데 왜 기쁜가? 자기혁신과 진취가 이뤄지기 때문에 희열(喜悅)을 느끼는 것이다. 學而時習을 즐겁다(樂)가 아니라 기쁘다(說=悅)고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1편 「學而(학이) 1」 중에서
孟懿子問孝(맹의자문효)하자 子曰(자왈) 無違(무위)다
樊遲御(번지어)할 때 子告之曰(자고지왈) 孟孫(맹손)이 問孝於我(문효어아)하길래 我對曰(아대왈) 無違(무위)라 했다.
樊遲曰(번지왈) 何謂也(하위야)입니까? 子曰(자왈) 生事之以禮(생사지이례)하며 死葬之以禮(사장지이례)하며 祭之以禮(제지이례)하는 것이다.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는 말했다. “어기지 않는 것이다.”
번지가 공자가 타는 수레를 몰고 있을 때였다. (이때 공자는 문득 맹의자와의 문답이 떠올랐다.) 그래서 공자가 일러 말하기를 “맹의자가 효를 묻길래 답하기를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노라”고 한다.
번지가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말했다.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내고, 예로써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禮(예)란 무엇인가? ‘살아계실 적에는 예로써 섬긴다,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낸다, 예로써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가? 이미 ‘學而’ 12, 13, 15와 바로 앞의 ‘爲政 3’에 禮에 관한 언급이 나온 바 있다. 그것은 일단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위의(威儀)로 규정해 놓은 절차’라고 정의할 수 있다. ‘內德外禮(내덕외례)’, 德(덕)과 禮(예)는 안팎이 서로 조응해야 한다. 마음[內]만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 겉[外]만 있고 마음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德은 바탕[質]이고 禮는 애씀[文]이다.
공자는 당연히 맹의자가 어기고 있다[有違]고 본 것이다. 아버지와 관련해서 禮를 어기고 있고 나아가 군주에 대한 禮도 어기고 있음을 넌지시 시사하려 한 것은 아닐까? 맹의자에 대한 은근한 질타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이 점에서 주희의 풀이를 참고할 만하다. “이때 삼가(三家)가 참람한 예(禮=정변)를 행하였으므로 공자께서 이것으로써 경계하신 것이다. 그러나 말씀한 뜻이 원만하여 또 오로지 삼가(三家)만을 위해 말씀하시지 않은 듯하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2편 「爲政(위정) 5」 중에서
子曰(자왈) 君子無所爭(군자무소쟁)이나 必也射乎(필야사호)한다. 揖讓而升(읍양이승)하여 下而飮(하이음)하니 其爭也君子(기쟁야군자)답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경쟁을 한다. 상대방에게 읍하고 사양하며 올라갔다가 내려와 술을 마시니 이러한 다툼이 군자다운 것이다.”
조선 시대 때도 大射禮는 국가 차원의 의례였다. 이에 관해서는 조선의 학자군주 正祖(정조)의 풀이가 참고할 만하다. “다툼[爭]은 힘을 통한 승부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心力(심력)을 견주어보는 것이니, 다툼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실제로는 다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에 ‘그 다툼이 군자답다’고 한 것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고 하였으니 맹자의 이 말은 바로 『논어』의 이 장에 대한 풀이라 하겠다.”(『홍재전서』)
정리하자면 이 장은 활쏘기의 사례를 통해 승부[質]과 격식[文]이 잘 조화된 禮, 즉 大射禮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八佾 16’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禮樂의 文質(문질) 문제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편 「八佾(팔일) 7」 중에서
子曰(자왈) 里仁爲美(이인위미)하니 擇不處仁(택불처인)이면 焉得知(언득지)이겠는가?
공자는 말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마을은 어짊이 중요하니, 가려서 어진 마을에 가서 살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을 보는 지혜를 가진 자이겠는가?”
‘八佾’ 편에서 禮樂(예악)에 관한 기본적인 논의를 마친 후 이제 인간적 본바탕이라 할 수 있는 ‘어짊[仁]’으로 넘어왔다. 그런 점에서 어짊은 禮樂보다는 좀 더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어짊이 있고 나서야 禮樂이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는 여기서 어짊은 추상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실재하고 있는 가장 구체적인 실천행위임을 보여준다. 마을의 ‘어짊’ 혹은 ‘어진 마을’에 관한 글로 ‘里仁’ 편을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중략)
이 장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어짊[仁]의 문제와 관련해 마을의 중요성을 지적한 놀라운 통찰이다. 사람처럼 마을에도 인심이 박한 마을이 있고 후한 마을이 있다. 어진 마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마을도 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어진 이들과 가까이 하면 어질어지고 그렇지 못한 이들과 가깝게 지내면 어짊에서 멀어진다. 어짊[仁]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불변의 성질이나 성향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文]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陽貨 2’는 그 점을 일깨워주는 기본적인 명제다.
―4편 「里仁(이인) 1」 중에서
文質의 文이 애쓰다로 풀이할 경우 『논어』의 어느 한 구절이 어떻게 완벽하게 해명되는지를 잠깐만 짚어보겠다. ‘學而 6’에서 공자는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오면 효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효도는 바탕(質)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學而 7’에서 자하는 “부모 섬기기를 기꺼이 온 힘을 다하여 해야 한다”고 말한다. 효도에 ‘기꺼이 온 힘을 다하여’가 추가된 것이다. 質에 文이 추가된 것이다. 文은 애쓰는 것이라고 했다. ‘기꺼이 온 힘을 다하여’는 곧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기꺼이 온 힘을 다하여’라는 말은 다소 추상적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里仁 18’에 나온다.
공자는 말했다. “부모를 섬기되 (부모의 잘못이 있을 때) 은미하게 간해야 하니, 부모의 뜻이 내 말을 따르지 않음을 보더라도 더욱 공경하고 어기지 않으며,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기꺼이 온 힘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효와 관련된 文, 즉 애쓰는 법을 정확히 풀이해 내는 것이다.
―「나오는 말_ 드디어 ‘애쓰는 법[文]’을 배우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