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1926년 7월 1일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읍 당산동(堂山洞)에서 태어남.
1945년 함북 경성의 경성고보(鏡城高普) 졸업.
1949년 도일하여 《민주신문》 편집국장.
동경대학의 이케가미(池上鎌三) 교수 밑에서 역사 철학 연구.
1950년 《요미우리신문》 서울 특파원.
1955년 재일 한국거류민단 사무총장.
1957년 귀국하여 서상일, 신숙, 최익환, 김성숙, 이동화 등과 함께
민주혁신당 창당에 참여, 당 대변인.
1961년 서상일, 김성숙(金星淑), 김성숙(金成淑) 등과 함께 통합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
창당, 국제국장. 일본의 우당들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가입 문제 협의차 도일 중 5·16 쿠데타로 망명 생활 시작.
1963년 SI에 통일사회당을 옵서버 정당으로 가입시킴.
1965년 김성숙(金成淑), 구익균, 이봉학, 안필수 등과 함께 통일사회당 재발기.
1966년 스톡홀름 SI 10회 대회 참석. 빈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청년연맹
대회에서 의장단에 선출됨.
1969년 통일사회당 기관지 《민족전위》 편집장.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운영위원. 통일사회당 SI 정회원으로 승격됨.
1970년 통일사회당 부위원장. 한국노동평의회 의장. 아시아태평양지역 사회당기구
집행위원. 12월 통일사회당 위원장, 대통령 후보.
1971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2년.
1974년 윌슨 영국 수상이 주재한 런던 SI 지도자회의에 참석.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여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으로 선출됨.
1975년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됨.
1977년 도쿄 SI 지도자회의에 참석,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고 김대중, 김지하 등
민주 인사의 석방을 호소.
1980년 마드리드 SI 15회 대회에 참석.
1981년 사회당 위원장.
1983년 한국사회민주문화연구소 창립, 이사장 취임.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
1985년 사회민주당 위원장.
1994년 8월 11일 18시 50분 자택에서 운명. 유족으로는 부인 윤초옥,
아들 밝힘, 한길, 누리가 있음